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다.
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리고 짜릿했던 순간도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있다.
서킷 주행이 아쉽게 느껴졌던 적은 처음이다.
지금까지 메르세데스-AMG가 만든 차량 중 가장 완성도 높은 모델이라 평가받는 `GT-R`을 타고 독일 빌스터베르크 서킷 주행을 끝낸 느낌이다.
지난 18일 독일 북서부의 소도시 바트 드리버그에서 글로벌 미디어를 대상으로 벤츠의 고성능카 브랜드 메르세데스-AMG GT 패밀리 시승행사가 열렸다.
스포츠 레이싱카인 GT-3와 GT-4를 포함해 엔트리모델인 GT, GT 로드스터, GT-S, GT-C, GT-C 로드스터, GT-R 그리고 AMG 5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GT-C 에디션 50까지 고성능 모델 GT 전 차종을 시승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기자는 먼저 일반 도로에서 `GT 로드스터`와 `GT-C 에디션 50 로드스터` 시승을 마쳤고 이제 빌스터 베르크 트랙에서 최상위 스포츠카 모델 GT-R 시승만 남았다.
●폭우도 시샘한 'AMG GT-R'
2013년 개장한 빌스터 베르크 서킷은 공군에서 폭발물 저장 공간으로 사용되던 곳을 자동차 경주장으로 바꾼 서킷이다. 트랙은 4.2km 길이에 19개 커브, 21% 경사도를 갖춰 고저차가 심하면서 깊숙한 코너가 많아 다이나믹한 주행을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먼저 시승을 끝낸 호주의 한 기자는 “빌스터 베르크는 심한 경사와 블라인드 구간, 타이트한 헤어핀 커브 등 레이스 트랙보다 더 심한 롤러코스터가 존재하는 곳”이라며 “비가 내리지 않아 무사히, 성공적으로 시승을 마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소감을 털어놨었다.
그런데 우리 팀의 트랙 주행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앞서 서킷 주변 시승에서 갑작스러운 폭우를 마주하고 트랙 시승이 가능할지 걱정이 앞서던 터였는데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다.
잠시 트랙 시승 행사가 중단됐다. 트랙 일부 구간이 침수되면서 체험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여기까지 와서 GT R을 못타는 상황이 벌어지면 안되는데...’ ‘사고 없이 무사히 시승을 마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20여 분이 지나 비가 그쳤다. 그러나 젖은 노면에 위험할 수도 있어 곧바로 시승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또 다시 기다려야 했다.
잠시 뒤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녹색지옥에 선 녹색괴물 '출발이다!'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던 헬맷을 꾹 눌러쓰고 서킷으로 나가니 빗방울을 흠뻑 뒤집어 쓴 뉘르부르크링의 녹색괴물 ‘GT R’ 세 대가 일행을 반긴다.
설레는 맘으로 시트에 앉아 바닥에 밀착하다시피 시트에 몸을 넣었는데 웬걸 브레이크에 완전히 발이 닿지 않는다. 다시 확인해도 시트는 더 이상 이동하지 않는다. 이놈의 숏다리가 문제다. 어쩐지 탑승 전부터 길쭉길쭉한 인스트럭터들의 기럭지가 눈길을 사로잡더라니. 결국 방석을 두 개 받아 하나는 바닥에 깔고 다른 하나는 등 뒤에 끼워 넣었다. 비로소 안정적인 자세가 잡혔다.
주행 모드는 스포츠 플러스에 맞춰져 있다.
출발을 앞두고 무전을 통해 인스트럭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처음은 코스를 익히는 정도로 서서히 주행을 할 것입니다. 비가 내려 노면이 미끄러운 상태이므로 안전이 중요합니다. 때문에 변속기가 변속기를 교체할 수 있도록 맡겨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적으로 트랙에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준비됐나요? 이제 출발합니다.”
녹색 괴물이 ‘우르릉~’ 울부짖으며 앞을 향해 질주했다.
출발 전 트랙 지도를 보며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뒀지만 막상 서킷으로 나가니 생소하기만 하다. 일단 선두 차량을 따라 주행을 하며 브레이킹 포인트와 코스를 익혀나갔다.
블라인드 구간이 경사구간과 겹친 곳도 있고 급커브도 몇 차례 등장했다. 직선구간은 의외로 길어 꽤 기분 좋은 가속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젖은 노면에 마음껏 가속할 수 없는 점은 아쉽게 느껴졌다.
●빗길이라 200km/h에 불과 "아쉽다"
코스를 익힌 뒤 본격 주행이 시작됐다. GT R은 4리터 V8 바이터보 엔진에 AMG 스피드시프트 듀얼 클러치 7단 스포츠 변속기를 조합, 최고출력 585마력, 최대 토크 71.4kg.m의 성능을 발휘하고 정지상태에서 100km에 도달하는 시간은 3.6초에 불과하다. 최고속도는 318km/h다.
속도가 빨라졌는데도 급코너를 부드러우면서도 매끄럽게 빠져나간다. AMG 트랙션 컨트롤은 도로와 타이어 상태를 9단계로 조절하며 코너에서 탈출할 때 최적의 트랙션을 확보해 준다.
직진 구간에서는 쉽게 200km/h를 넘어선다. 빗길이 아니라면 더 속도를 내 볼 텐데 아쉬움이 더욱 커진다. 곡선 구간 진입 전 속도를 줄이니 ‘투두두둥 투두두둥’ 시원한 배기음이 귀를 스친다.
아찔한 블라인드 경사 구간을 지나고 다시 속도를 내려는 순간 ‘아차!’ 뒷바퀴가 젖은 노면에 살짝 밀리는 느낌이다. 좀더 속도를 냈다간 오버스티어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고 핸들을 꽉 쥐었다.
다행히 차량이 안정적으로 자세를 다잡는다. 핸들을 잡은 손과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순간이었다. 속도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다시 트랙에 집중했다. AMG 리어 액슬 스티어링은 속도에 따라 리어 휠을 차가 진행하는 방향과 같게 또는 반대로 꺾어줘 고속에서 안정성을, 저속에서는 민첩성을 높여준다.
옐로우 스티치와 4점식 노란색 안전벨트가 적용된 스포츠 버킷 시트는 코너링 구간에서 운전자의 몸을 확실히 지지해준다. 원하는 방향으로 제때 차체를 움직여주는 스티어링은 만족스러운 조작감을 선보인다. 브레이크의 제동성능도 안정적이면서 빠른 응답을 선보인다.
무사히 시승을 마쳤지만 비로 인해 GT-R의 성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없었던 것 같아 아쉬움이 컸다.
GT-R 은 내년 상반기 중 국내 출시 예정이며 가격은 미정이다. 영국 출시 가격은 14만3245유로(약 2억 원) 정도로 책정된 바 있다.
이제 국내에서 GT-R의 성능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날을 기다려야겠다.
/독일 바트 드리버그=지피코리아 김미영 기자 may424@gpkorea.com, 사진=메르세데스-벤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