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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5` 한국자동차경주협회 탄생의 비화

`응답하라 1995` 한국자동차경주협회 탄생의 비화

  • 기자명 지피코리아
  • 입력 2014.04.09 13:56
  • 수정 2014.04.14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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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모터스포츠의 역사기행 제1화] 태국에 날아든 친위 쿠데타 팩스 한장

1995년은 한국 모터스포츠 업계의 숙원이었던 국내 유일의 온로드 전용 서킷이 문을 열고 공식 시리즈를 시작하여 한국 모터스포츠의 원년이 되었다.


1995년은 한국 모터스포츠의 원년이라고 불리운다.

한국 모터스포츠 업계의 숙원이었던 국내 유일의 온로드 전용 서킷이 문을 열고 공식 시리즈를 시작했다. 온로드와 함께 국내 모터스포츠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오프로드 시리즈가 현대자동차의 후원으로 시리즈를 전개하였다. 현대자동차가 국제 랠리(APRC)에 진출하며 전용 서킷 건설 움직임도 있었고 춘천시에서는 레이싱타운 건설을 준비하였다. 95년도 한국모터스포츠는 MBC 문화방송이 주도하고 있었다. 온로드 공식 시리즈 일정을 시작한 용인 자연농원 모터파크(현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의 '95 한국모터 챔피언십 시리즈'와 영종도의 '현대컵 오프로드 시리즈' 두 대회가 MBC 코리아 그랑프리 타이틀로 중계되었다.

또한 MBC 문화방송에서는 1996년도 온,오프로드 대회 후원과 함께 시리즈 중계방송을 악속하여 한층 모터스포츠계를 뜨겁게 만들었다.

이러한 배경속에서 한국 모터스포츠 주관 단체였던 (사)한국자동차협회(KAA) 에서는 새 집행부 구성에 대한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당시 분위기를 이해하기 위해 12월 연말에 개최되었던 태국랠리 현장을 들어가 본다.

용인 모터파크 개장을 시작으로 출범한 한국모터 챔피언십 시리즈와 오프로드 시리즈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감한 KAA 집행부는 1996년 시즌을 준비하면서 태국랠리를 참관했다.

아시아퍼시픽랠리(APRC) 95 최종전인 태국랠리에 참가한 현대 랠리스포츠팀 웨인벨(호주)의 아반떼.

1995년 12월 1~5일. 아시아퍼시픽랠리 챔피언십(APRC) 시즌 최종전인 6라운드.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초원 벌판을 달리는 랠리로 유명한 30년 전통의 태국랠리에 총12개국의 10개 메이커에서 모두 50대의 랠리카가 참여했다. 현대 랠리팀의 웨인 벨(호주, A3 클래스, 아반떼)은 시즌 클래스 종합 우승을 이미 확정한 상태였고 한국에서 3명의 드라이버가 출전했다.
스페셜 종목인 S12(1301~1600cc) 그룹에 엑센트를 몰고 오프로드의 황제로 불리웠던 오영만(용마그룹), 현대 마북리 연구소팀 소속으로 김동옥/D.보디(현대랠리팀), 국내 오프로드 강자로 군림했던 임재서/양인환(스프린터)가 합류해 열전을 펼쳤다.

1995년 겨울, 영하의 한파속에서 12.12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이 전격 구속되는 CNN 월드뉴스가 서울발로 방송을 타고 있었던 태국의 북부도시 프라(Phrae). 정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었던 한 겨울의 서울과는 달리 이곳 태국의 미니도시 프라에서는 랠리카들이 초여름의 무더운 산야를 뒤흔들고 있었다.

95 MBC 코리아 그랑프리 한국모터챔피언십 시리즈 각 종목별 종합 우승자들. 왼쪽부터 박준우(호크,투어링B), 김주현(오일뱅크, 현대전), 박정룡(인터내셔날,투어링A), 이승일(솔렉스,기아전), 박시현(인터크루, 대우전).


지난 5전 홍콩-베이징 랠리 우승으로 A3 클래스 종합 우승을 확보한 웨인 벨은 이번 대회에서 F2 부문(2륜 구동, 논터보) 종합 우승을 노렸지만 리타이어 하면서 종합 2위에 만족해야 했다.

대회 둘째 날 오영만 조와 임재서 조는 급경사 산악 비포장에서 타이어 펑크로 리타이어하고 김동욱 조는 마지막까지 투혼을 발휘해 한국팀으로는 유일하게 완주하며 종합 22위, 클래스 준우승을 달성했다.

이날 태국 랠리에는 한국 참가팀들의 스탭외에도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취재 및 응원, 참관 등을 목적으로 참가하였다. 현대자동차 초청으로 당시 모터스포츠 전문 월간지 ‘오토스포츠’를 발행하던 필자와 자동차생활 김태종 기자, 월간 자동차저널 오의환 편집국장 등이 취재기자로 참여하였다. 현재 독일에서 월드랠리챔피언십(WRC) 현대 쉘 월드랠리팀 관리하고 현대자동차 모터스포츠 최규헌 독일 법인장이 담당 대리를 맡고 있었다.

한국자동차협회(KAA)에서는 MBC 스포츠국 컨설팅을 맡고 있는 엔터테인먼트사 이정희 대표와 함께 한영수 전무, 강영태 과장 등이 직원들과 함께 참관하여 대회를 둘러보고 있었다. 춘천시에 레이싱타운 건설 계획을 추진했던 당시 배계섭 춘천시장과 정태석 시의회 의장 일행도 태국랠리를 참관했다. 당시 대회에 참가하는 국내 팀들을 지원하고자 김광진(임팩트 레이싱팀), 김정수(당시 이글레이싱팀) 단장 등도 랠리를 참관했다.

당시 오프로드 왕회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오영만(사진. 용마그룹)은 신예 정재순에게 원년 챔프를 내주었다.


대회 둘째 날 태국 랠리사무국으로 한국에서 팩스 한 장이 들어왔다. KAA의 박만석 회장이 발표한 새 집행부 구성에 대한 내용으로 실질적으로 협회를 이끌어 오던 정선혁 부회장과 현지 태국 출장 중이었던 한영수 전무, 강영태 과장 등 직원들은 새 집행부에서 제외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두고 주변에서는 KAA 박만석 회장의 친위 쿠데타라고 부르기도 했다.

보통 쿠데타는 힘의 열세에 있는 세력들이 무력이나 교묘한 수법을 이용하여 일으키는 것으로 하부 세력이 상부 조직을 밀어내고자 할 때 많이 이용한다. 이와는 반대로 권력을 차고 있으면서도 지위가 불안할 때 자신의 친위 세력을 이용하여 반대파를 밀어내고 위치를 확고히 굳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친위 쿠데타라 부른다.

KAA는 1967년 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산하 사단법인으로 설립되었다. 유명 무실 단체로 우여곡절을 겪어 오다가 1992년 현 집행부로 새 조직을 갖추었다. 다른 군소 단체, 협의체 등과의 통합하는 진통을 겪고 자연농원 모터파크와의 극적 타협을 이끌어내면서 올 시즌 시리즈를 마무리하고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었다.

95 MBC 코리아 그랑프리 현대컵 오프로드 시리즈 각 종목별 종합 우승자들. 왼쪽부터 배수오(가자,대우전), 윤영주(화랑, 현대전), 정재순(허리케인,투어링A), 김영환(파라,기아전), 김의수(화랑,투어링B)


새 시즌을 준비하면서 회장단 구성에 갈등이 표출되었다.

박만석 회장은 임기 7개월을 남겨둔 시점에서 임시 총회를 열어 회장 재임을 선언했고 새 집행부 구성에 들어갔다. 여기에 그동안 실질적인 업무를 수행해 왔던 정선혁 부회장 그룹이 전격적으로 제외되자 이들은 박 회장 재임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한국 모터스포츠의 원년으로 불리는 1995년, 겨우 1년을 어렵게 마무리하고 큰 힘을 모아야 할 새 시즌을 앞두고 결국 협회는 신, 구 집행부로 한 지붕 두 가족이 되었다. 걸음마를 앞두고 자리 다툼으로 협회 행정이 혼란에 빠지게 되자 각 팀들은 신속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게 되었다. 이 때 대부분의 팀에서는 협회의 내부 분열을 지켜보면서 ‘도토리 키 재기’라고 비난하며 총 사퇴를 주장하며 추진력있는 새로운 인사 영입을 희망하였다.

협회의 혼란을 틈타 외부의 지원군들이 가세되면서 더욱 가닥을 잡지 못하던 신구 집행부는 결국 분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계속)

/강태성(자동차&모터스포츠 칼럼리스트) rallykang@nate.com, 사진제공=오토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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