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뚜껑 열린 이동욱, 유럽에 강한 인상 심어줘”

“뚜껑 열린 이동욱, 유럽에 강한 인상 심어줘”

  • 기자명 지피코리아
  • 입력 2003.05.24 00:00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홍식의 레이싱 일지] 2003 F3 Euro Series 3,4 Round – 이탈리아 아드리아 레이스웨이

5월6일 밤 11시가 넘은 시각에 이동욱 선수에게서 전화가 한통 걸려 왔다. 대뜸 하는 소리가 ‘형, 같이 가요’

사실 몇 일전부터 이동욱 선수가 이탈리아의 아드리아에서 열리는 F-3 Euro Series Round 3&4에 같이 가지고 했었지만 올해 필자의 너무도 꽉 짜여진 스케줄 탓에 선뜻 그러겠다고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황 이었다.

 

지난 4월 27일에 독일의 호켄하임에서 열렸던 1, 2전을 치루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내게 달려와서 너무나 힘들었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이동욱 선수를 보며(독일 현지에서 실은 전화도 몇 번 했었다) 그가 얼마나 힘든 레이스를 치루고 왔는지 짐작할 수는 있었다.

 

외국에 경기가 있어 나가게 되면 사실 할 일이 정말 많다. 용인에서 열리는 국내경기에서는 참 편하게 경기를 치루지만, 해외 경기는 이와는 정말 다르다.

 

팀 매니저와의 미팅, 팀 엔지니어와의 미팅, 조직 위원회에서의 전달 내용... 게다가 이동욱 선수처럼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바둥거리는 상황까지 겹쳐 있다면....

 

이번 경기는 도착하면서부터 일이 조금씩 꼬이기 시작했다. 현지 시각 밤 11시가 넘어서야 이태리의 볼로냐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현지의 큰 행사(사실 뭔지는 잘 모른다) 때문에 주변의 호텔에 방이 단 한개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떠나기 전에 호텔을 예약하고 떠났으면 좋았겠지만 공항에 도착해서 조금이라도 싼 모텔을 잡아 경비를 절약하려고 했던 우리의 계획이 큰 낭패를 보는 순간이었다. 결국 호텔을 포기하고 이동욱 선수의 출전 팀인 ‘드루멜 레이싱’ 팀이 있는 Misano로 떠난 건 1시가 넘어서였다. 택시비로 30만원을 지불하고 팀의 숙소에 도착한건 새벽 3시가 넘은 시각....

 

새벽 6시30분에 기상해서 팀의 사장인 Mr. Luca Drudi와 미팅을 한 뒤, 떠날 준비를 끝내고 경기장인 Adria International Raceway에 도착했다. 경기장의 분위기는 태백 경기장을 연상케 했다. 길이도 2.7km로 태백보다 약간 길었고 특별한 언덕으로 이루어진 블라인드 코너 등이 없는 점 등이 그랬다. 경기장의 기본적인 시설은 조금 더 나은 정도였지만 DTM과 F-3 euro series라는 이벤트가 단 하루 만에 모든 것을 바꿔 버렸다.

 

정말 갖고 싶은 경기용 차량 및 장비 운송 트럭 (우리나라에 1대도 없음) 100대 이상이 경기장에 들어서 있고 3일 뒤에 철거할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화려한 부스들이 들어서자 경기장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드디어 5월 9일 금요일 첫 연습에 들어갔다. 사실 이 첫 연습에 들어가기 까지 Mr. Drudi와 수없이 많은 미팅을 가졌다. 팀에서의 기본적인 입장은 이랬다.

 

이동욱 선수가 분명히 가능성이 있는 드라이버이고 성실하기 때문에 자신들도 꼭 이동욱 선수를 자신들의 팀으로 출전시키고 싶다. 하지만 경기 출전에는 워낙 돈이 많이 들어가고 ,규모가 큰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드라이버가 스폰서 없이는 출전 자체가 힘들다는 것이다. 어렵게 어렵게 이번에 출전을 한다 하더라도 다음경기는 또 어떻게 할 것인지....

 

나도 팀의 전반적인 운영체계를 아는지라 그의 말을 100% 이해는 했다. 양측의 입장 차이는, 이동욱 선수는 어떻게 해서든 올 시즌을 출전한다는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고, Mr. drudi의 입장은 혹시라도 이동욱 선수가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중도 포기를 하면 다음 드라이버를 구하는 문제, 주최측과 풀어야 하는 행정적인 절차 등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은 양측의 입장을 모두 이해하는 필자가 절충을 풀어야 했고 나름대로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다. 연습 바로 직전까지 이런 문제로 머릿속을 꽉 채웠으니 연습이 제대로 되겠는가?

 

결국 65분 동안의 연습 세션은 드라이버가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는 사이 그냥 그렇게 없어져 갔다. 결과는 최하위인 30위, 1등과 무려 2.536초가 느렸으니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 것이다.

 

1위부터 26위까지는 1.2초 이내의 랩타임을 기록하고 있다. 가히 세계 최고의 F-3 경기라는 것을 실감 할 수 있었다. 작년까지는 F-3 경기가 1년에 단 3회의 국제 경기만이 있었다. Marlboro Masters와 Macau G.P, 창원 Super Prix가 그것이다. 이 경기들은 F-3 전 세계 챔피언전과 다름없는 경기들이다. 하지만 올해 F-3 Euro series가 출범하면서 상대적으로 영국 F-3는 위축이 되고 유로 시리즈는 매 경기가 세계 챔피언쉽의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동욱 선수는 지금 현재 제 실력만 100% 발휘한다 해도 15-20위 정도는 가능하다고 본다. 당연히 우리나라, 아시아와 세계의 벽은 높다. 당장 10위 권내에 들 수 있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정도는 아닌데 하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았다.

 

연습 세션이 끝나고 약 4시간 뒤인 5시 45분에 2번째 경기의 예선이 시작되었다. 유로 시리즈는 금요일에 2전의 예선을 치루고 토요일에 1전의 예선과 결승 그리고 일요일에 2전의 결승을 갖는다.

 

예선전에 팀의 엔지니어가 이동욱 선수에게 물었다. 현재의 차량 상태는 어떠한지, 무엇이 더 필요한지 등, 하지만 이동욱 선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100% 달려 보았어야 차량의 이런 점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올 텐데 자신도 그렇지 못한 상태애서 차량의 무엇을 셋 업 한단 말인가? 같은 엔지니어로서 필자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예선은 시작되었고 결과는 1분12초 580으로 1위와 2초 235의 차이를 보이며 팀 메이트인 Philipp을 제치고 29위를 차지했다. 팀의 사장서부터 엔지니어, 미케닉들까지도 모두들 안타까워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5월 10일 토요일이다. 이날은 필자에게 특별한 날이다. 34년을 살면서 처음으로 생일을 외국에서 맞는 날이다. 필자는 내심 이동욱 선수가 생일선물로 멋진 경기를 보여주길 원했다.

 

하지만 하늘은 무심하게도 아침부터 비를 쏟았다. 경험도 없는 저 어린 양(?)에게, 비가 오면 사고의 걱정 때문에 수리비를 생각하며 대시할 수 없는 이동욱 선수에게 이토록 가혹하게 하시다니....

 

결국 1위와 4.513초란 엄청난 차이로 최하위를 차지해야 했다.

 

비가 오면 좀더 차분하고 과감하게 대시하는 드라이버(여기에 경험도 많아야 한다)가 당연히 유리하다. 1번 코너를 돌며 여기서 실수하면 프론트 윙이 200만원, 휠이 100만원등 수리비에 대해 당연히 걱정하는 드라이버는 절대 빠를 수가 없다. 하지만 이동욱 선수는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그래야 했다.

 

오후 2시 20분에 시작한 첫 번째 결승에서 이동욱 선수는 차에 상처 안내고 완주하기란 그의 목표(?)를 달성하고 25위로 경기를 마쳤다. 사실 세상의 어떤 드라이버가 녹색등이 들어온 후 달리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1전 호켄하임 에서의 사고의 후유증과 돈에 대한 압박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끝나고 겨우 하는 말이 ‘형, 중반 지나서는 진짜 힘들었어요,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에까지 간 것 같아요‘ 그의 이 말이 나의 34번째 생일 선물이었다. 저녁에 쓸쓸하게 맥주를 마시고 내일을 기약했다.

 

드디어 경기의 마지막 날이다.


11시 40분에 시작한 레이스는 우리에게 희망의 불빛을 던져 주었다. 스타트를 알리는 신호와 동시에 이동욱 선수는 총알같이 튀어 나갔고, 3번 코너까지 12대의 차량을 추월해 중위권에 진입했다. 하지만 3번 코너에서 스핀 해 서있던 팀 메이트 필립의 차량과 추돌을 하면 프론트 윙을 잃었다. 아마도 이것이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포뮬러 레이스에서 차량의 프론트 윙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차량을 조금만이라도 아는 분들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고 이후 이동욱 선수는 드라이버로서의 본성을 되찾았는지(아마 200만원 생각은 안한 것 같다... ^^;;)달리기 시작했다. 사고 때문에 한참 쳐졌지만, 그래도 따라가기 시작했다. 순위는 사고 때문에 기대 할 수 없었다. 26위로 경기를 마쳤다. 하지만 프론트 윙이 없는 상태로 자신의 예선 최고 기록과 같은 랩타임을 기록하며 선전 하였다.

 

TV 카메라도 흥미가 있는지 이동욱 선수의 차량을 계속 화면에 담아내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이 처음 보는 ‘유럽에서 경기를 하는 한국인’이 뚜껑을 열고(--;;) 질주하는 모습이 그들에겐 꽤 인상적인 것 같았다.

 

이동욱 선수의 차량은 깨끗하다. 돈 때문에 사고가 두려워 제대로 밟아보지 못해 깨끗하고 , 스폰서가 없어서 스티커를 붙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깨끗하다.

 

10번의 이벤트 중 2번을 어렵게 치러낸 그가 나머지 8번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는 사실 필자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이번에 이동욱 선수가 실패 한다면 다음을 또 기약하기 힘들다는 것이 걱정되고 처음으로 한국에도 ‘모터스포츠’가 있다는 것을 알린 계기를 무산시키고 싶지 않다는 심정뿐이다.

 

언젠가 유럽에서 ‘대한민국’의 선수가 깨끗하지 않은 차량으로 자신 있게 질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모터스포츠인의 한 사람으로서 바란다.

 

p.s 동욱아 !!! 생일 선물 나중에 좋은 걸로 해라...

/글 전홍식(이레인팀, 수석 미캐닉) bigfoot69@hanmail.net, 사진=안진태 tornado2000@hanmail.net
출처:지피코리아(GPKOREA.COM)

저작권자 © 지피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