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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윌리엄스, F1에 바친 역경과 시련을 이겨낸 삶

프랭크 윌리엄스, F1에 바친 역경과 시련을 이겨낸 삶

  • 기자명 김미영
  • 입력 2021.11.30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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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스 F1팀은 세계적 자동차 경주 포뮬러원의 뿌리를 만들어낸 팀이다.

79세 나이로 28일 세상을 떠난 프랭크 윌리엄스는 1977년 윌리엄스 팀을 설립하고 7차례 드라이버 타이틀과 9차례 컨스트럭터즈 챔피언십 타이틀을 획득했다.

프랭크 윌리엄스는 2013년 시즌을 앞두고 클레어 윌리엄스에게 팀을 맡겼지만 2019년에는 취임 50년째를 맞기도 했다.

팀 참여의 폭을 대폭 줄인 프랭크 윌리엄스는 2016년 폐렴에 걸릴 때까지 정기적으로 그랑프리 현장을 지휘하기도 했다. 결국 지난 2020년 윌리엄스 가문의 팀 주식을 모두 미국 투자회사 드릴턴 캐피탈에 양도하면서 팀에서 완전히 손을 뗐고 병상에서 여생을 보냈다.

프랭크 윌리엄스는 엔조 페라리와 나란히 알랭 프로스트, 아일톤 세나, 나이젤 만셀 등 상징적인 F1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큰 별로 통했다. 윌리엄스 팀은 1980년대 F1 팬들 수백만 명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는 1942년 4월 16일 영국에서 태어났다. 영국 공군의 전투기 조종사였던 아버지와 특수 학급 교사의 어머니 아래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곧 부모는 이혼하고 스코틀랜드 기숙학교에 갈 때까지 이모와 삼촌의 손에서 자랐다.

10대였던 1950년 말 그는 한 친구에게 재규어 XK150S에 시승할 기회를 받은 게 그의 자동차인생 출발점이었다. 프랭크 윌리엄스는 드라이버와 미캐닉으로 짧은 경력 후에 식품판매상으로 번 돈으로 1966년 `프랭크 윌리엄스 레이싱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이어 F2와 F3에 수년간 출전한 후, 브라밤에서 F1 섀시를 구입해 1969년 세계선수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70년 프랭크 윌리엄스는 F1 네덜란드 GP에 출전했다가 자신의 팀 드라이버가 사고로 사망하자 팀을 해체했다. 친구의 죽음이 첫번째 비극이었다.

이후 1976년 윌리엄스는 석유왕 월터 울프에게 투자를 받아 팀을 다시 살려보고자 노력했다. 1977년 영국 옥스포드셔주의 빈 카페 창고를 매입해 다시금 F1에 도전한 윌리엄스는 경주차 FW07을 앞세워 1979년 F1 영국 GP에서 첫 승리로 탄탄대로를 걷게 됐다.

1980년에는 최초의 컨스트럭터즈 타이틀을 획득했고, 이듬 해에는 앨런 존스가 챔피언 타이틀도 획득하는 등 총 9회의 컨스트럭터즈 타이틀을 획득하며 넬슨 피케, 나이젤 만셀, 알랭 프로스트, 데이먼 힐, 잭 빌르너브를 시트에 태워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획득하며 F1 명가로 성장했다.

결국 프랭크 프랭크 윌리엄스의 경영하에 윌리엄스 F1팀은 통산 114승, 128회 폴포지션(예선 1위), 313회 포디움에 서는 기록을 썼다.

두번째 위기는 1986년 3월. 프랭크 윌리엄스는 경주차 FW11 테스트를 마친뒤 포드 시에라를 타고 니스 공항으로 주행 중 차가 전복되는 수준의 큰 사고를 당했다. 윌리엄스는 천장에 부딪혀 제 4척추와 제 5척추 골절을 입으며 하반신 마비의 시련이 시작됐다.

그 때부터 휠체어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1994년 F1 산마리노 GP에서 FW16에서 아일톤 세나의 죽음이 이어지며 또다른 시련의 계절을 맞기도 했다. 고인이 된 프랭크에는 딸 클레어, 두 아들 조나단과 하이머가 있다.

/지피코리아 김미영 기자 may424@gpkorea.com, 사진=윌리엄스 F1팀, 동영상=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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