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편집 : 2024-04-20 17:48 (토)

본문영역

세계 투어링카 레이스의 최정상 ‘DTM’ 레이스

세계 투어링카 레이스의 최정상 ‘DTM’ 레이스

  • 기자명 지피코리아
  • 입력 2012.02.28 04:37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벤츠·아우디·오펠 등 독일 대표 카메이커 3사 각축전 펼쳐

2004년 DTM은 자신들의 아주 긍정적인 관객 동원력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76만9천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원이 DTM을 보려고 서킷을 찾았기 때문이다. 경기당 만 명 정도의 관객이 드는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평균 7만6천9백명이란 수치가 갖는 의미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시즌 최종전이 열린 호켄하임은 DTM의 역사에서 가장 많은 13만3천 명이 레이스를 지켜보았다. 관중은 2003년에 비해 21%나 늘었다. 미국의 나스카와 호주의 V8 수퍼카 레이스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유일하게 해마다 관객이 증가하고 있고 지난해부터는 연간 11경기를 소화하고 있다.

그러나 DTM이 이런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한참 인기를 누리던 80년대 후반부터 본연의 자세를 잃고, 비용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등 대회의 성격이 변했기 때문이다. 97~99년 까지 3년동안 대회를 중단했으나 2000년 이후 다시 본래의 취지를 살리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비용의 그룹C 스포츠카만이 출전할 수 있던 ‘Deutsche Rennsport-Meisterschaft’레이싱에 참가하려는 드라이버가 없자 당시 스포츠를 관장하던 ONS는1983년 5월 독일 모터스포츠를 부활시킬 새로운 계획을 발표한다.

프랑스의 ‘계급 없는 사회’를 벤치마킹한 양산차를 이용한 단 하나의 클래스로 이루어진 레이싱을 펼치겠다고 선언한 것. 예를 들어 파워가 뛰어난 차는 무게를 더 얹거나 아니면 타이어 사용을 규제하는 방식의 핸디캡을 주어 시보레 카마로나 BMW의 323i, 오펠의 카데트 또는 피아트의 리트모 등이 한 클래스에서 레이스를 펼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었다.

1984년 3월 벨기에 ‘졸데르’에서 눈과 비가 내리는 가운데 DTM이 문을 열었다. 첫 대회의 타이틀은 현재 오펠의 모터스포츠 감독인 V. 스트리첵의 품에 안겼다. 이듬해부터는 이 경기가 해외에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터보 엔진이 등장했다. 터보 엔진은 순식간에 모터스포츠를 장악했으나 핸디캡 적용 방식의 규정으로 여전히 비슷한 조건에서 경기를 펼칠 수있었다.

1988년 BMW, 포드, 메르세데스-벤츠, 오펠 등 네 개의 회사가 ONS와 주최자 ITR과 함께 DTM 그리드에 올랐다. 기존의 햅디캡 적용 방식에 관한 재검토가 진행되었고, 시리즈 프로모션에 쓰일 일정 금액을 관련된 회사들에게 부담하도록 하기 시작했다.

1990년 포드가 챔피언십서 빠지면서 아우디가 합류했고, 그 첫 해에 4륜구동의 V8 콰트로로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듬해도 역시 아우디가 타이틀을 챙겼다. 1992년에는 DTM 사상 처음으로 여성 드라이버 E. 로르가 호켄하임의 서킷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1993년 배기량 최대 2.5L, 6기통 이하로 엔진 규정이 묶이면서 엔진과 섀시, 에어로다이내믹의 변형도 허용하는 클래스1의 새로운 규정이 소개 되었다.

클래스1 규정은 협의를 거치며 탄생했으나 이로 인해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1993년 영국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이후 DTM은 국제화의 조짐을 보였고, 1995년에는 DTM의 뒤를 이어 태리, 핀란드,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에서 ITC(InternationalTouring Championship)라운드가 열렸다. 10만 명이 넘게 모여든 관중들은 헬싱키의 좁은 도로를 누비며 경주를 벌이는 진풍경에 열광했다.

1996년 DTM은 ITC에 보다 많은 길을 열어주었다. 열 세 경기 중 여섯 경기가 독일에서 열리고 나머지 경기들은 유럽으로 번졌다. 시즌 마지막에는 브라질과 일본에서 경기가 열릴 정도였다. 그러나 이로 인한 참가비용의 상승으로 시즌 종반에서는 오펠과 알파로메오 두 회사가 탈퇴를 선언했다. 여러 문제들의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경기가 중단되면서 DTM은 막을 내리는듯 했다.

1999년 12월 DMSB는 비용을 줄이면서 관객들과 호흡하던 예전의 DTM으로 돌아가는데 합의 했다. 그 후 2000년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지속적인 참가 의사를 보내온 아우디, 벤츠, 오펠 세 개의 제조 회사는 아직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01년에는 10경기 중 6명의 다른 우승자가 나오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DTM은 관중들에게 박진감 넘치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비용의 효율성을 고려한 자동차경주다. 이 때문에 차를 개조하는데 너무 많은 비용이 투자되지 않도록 튜닝에 많은 제한을 두고있다. 개조 범위를 명확하게 설정해 모양만 양산차와 같고 부품은 모터스포츠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차는 사용할 수 없다.

강철 프레임에 합성플라스틱으로 차제를 만들고, 기존차의 강철 지붕은 그대로 사용해야한다. 경주차는 뒷바퀴굴림을 기본으로 ABS나 트랙션 컨트롤시스템을 사용할 수 없다. 기어박스와 엔진, 리어윙, 카본 파이버 브레이크 등 부품들은 같아야 하고 규정상 정해진 제조회사 제품만을 사용해야한다. 또한 시즌을 마칠 때까지 하나의 엔진만 쓸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부 부품들도 정한 제조회사의 것만을 사용한다. V8엔진에 최대 실린더 뱅크 앵글은 90도, 배기량 4L에 4기통 까지 사용할 수 있다. 인덕션 시스템은 각각 최대 지름 28mm의 공기 흐름 제어 장치를 달아야 한다.

또한 두 개의 다른 차동 기어박스를 사용해야 하며 X트랙이나 휴랜드에서 공급받은 것만을 사용할 수 있다. 타이어는 던롭만쓸수있다. 카본 파이버 브레이크 디스크와 브레이크 패드, 캘리퍼도 모든 팀이 동일한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 모든 차의 에어로 다이내믹 설정 장치는 드시 시즌 시작 8일전 까지 한 제조사의 제품을 공급받아 시즌을 마칠 때까지 변경할 수 없다.

경주차의 무게는 이런 장치가 포함된 가운데 드라이버가 탄 상태에서 1천 50kg이상이어야한다. 모든 경주차는 보쉬에서 공급받는 공통된 컨트롤 장비를 달아야 한다. 데이터 트랜스미션은 자동차가 움직이는 동안에는 사용할 수 없다. 안전을 위해 카본 파이버 안전 셀이 콕피트 안에 있어 운전자를 보호하도록 하고 전후방에 충돌 보호 장비를 단다.

시즌 시작 2주전에 팀당(두 명의 참가 드라이버가 있다) 시즌 내내 사용해야 하는 3개의 엔진이 주어진다. 또 한 경기당 각각의 드라이버에게 40개의 슬릭 타이어가 허용되며(앞바퀴 20, 뒷바퀴20) 레인 타이어 사용은 자유다.한 해 모두 11경기를 소화하는 DTM은 금요일에 90분씩 두 번의 테스트 주행이 있고, 토요일은 오전에 60분간 자유 연습 후 오후에 예선을 치른다.

1랩의 기록으로 1차 예선 순위를 정한뒤 그 순위의 반대로(10등이 첫 번째로 온다)로 다시 한 번 25분 동안 예선전을 치러 결선에서의 그리드가 주어진다. 결선 당일 오전에는 30분정도 워밍업 시간이 있다. 결선은 스탠딩 스타트를 기본으로 1~8위까지 10-8-6-5-4-3-2-1의 포인트가 주어진다.

레이스는 총거리 160km 정도를 달리는데 이 때 의무적으로 두 번의 피트 스톱을 해야 한다. 피트 스톱은 6랩 이전에는 할 수 없고, 미캐닉은 13명으로 제한을 둔다. 피트레인의 최고속도는 80km(잔드부르트와노리스링에서는 60, 아비뇽에서는 50)로 제한된다. DTM은 독일의 3개 자동차 회사 인 아우디, 메르세데스-벤츠 오펠의 후원을 받는다. 이 회사들은 아우디 스포츠팀‘압트 스포츠라인’과‘요셋’, 메르세데스-벤츠의‘H.W.A GmbH’‘, 뮈케 모터스포츠’마지막으로 오펠의 두 팀‘퍼슨 모터스포츠 GmbH’와‘팀 OPC’의총 여섯개 팀을 지원하고있다.

한동안 DTM 무대를 떠나 있다가 가장 뒤늦게 참가한 아우디는 2004년 드라이버즈, 메뉴팩처러즈, 팀 챔피언십의 3개 부문을 모두 석권하는 등 아주 좋은 성과를 거뒀다. 아우디 A4는 10개 경기 중 5개의 우승을 따냈으며, 6개의 폴포지션을 차지하는 등 압도적인 빠르기를 선보였다.

메르세데스-벤츠는 98년과 99년 F1 그랑프리에서 2년 연속으로 드라이버즈 타이틀을 거머쥔 M. 하키넨을 맞아들이는 등 가장 꾸준하게 DTM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벤츠의 노련함은 2000년 DTM이 새롭게 시작되자 B. 슈나이더가 운전대를 잡은 벤츠 CLK-DTM을 곧바로 챔피언자리에 올려놓으면서 증명되었다.

이어 2001, 2003년 챔피언을 따내는 위력을 보여주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이를 기념하기위해 2003년 챔피언카를 베이스로 한 시판용 CLK DTM AMG을 한정 생산해 판매했다. 2004년에는 아우디에게 타이틀을 넘겨줬으나 2005년부터는 이를 다시 찾아왔다.

아우디와 메르세데스-벤츠에 비해 두드러진 결과를 내지는 못하지만 오펠도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04년에는 오체레벤 모토파크에서 로이터가 3위로 골인해 포디엄에 오른데 이어 오펠의 세 명의 드라이버가 시즌 톱10에 오르는 영예를 않는 등 최고의 해를 보냈다.

OPC(Opel Performance Center)팀은 한층 강화된 GTS V8 오펠 벡트라와 새로 영입된 4명의 드라이버와 함께 2005년을 열었었다. DTM 최초 챔피언으로 오펠의 모터스포츠 감독인 V. 스트리첵은“최근 들어 DTM은 국내는 물론 해외의 팬들과 미디어로부터도 아주 좋은반응을 얻고 있다. 이로 인해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가격 경쟁력 에서도 다른 대회보다 유리하다”며“이것이 OPC가 지속적으로 DTM활동을 확장할 수 있는 이유”라고 했다.

그는 또“DTM의 미래는 앞으로 오펠뿐 아니라 다른 자동차회사 들이 파트너로 시리즈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작년까지 도요타 F1팀에서 활약한 랄프 슈마허가 올해부터 메르세데스의 운전대를 잡고 경기에 나설 예정이다.

/카라(KARA) 오토스포츠 2008년 3월호
[Copyright ⓒ KAR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지피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