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자율주행, FTA 타고 韓 상륙…현대차그룹은 '안방 규제'에 발목

2025-11-17     김기홍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산 첨단 자율주행 기술의 국내 시장 '하이패스' 통로가 되면서, 정작 국내 기업이 안방에서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동일 수준의 기술을 개발하고도 각종 규제와 인증 장벽에 막혀 상용화에 애를 먹은 것이 다시 알려지면서 자율주행 시장 주도권을 초기부터 외국계 기업에 내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코리아는 지난 12일 공식 소셜미디어(SNS) 엑스(구 트위터) 계정을 통해 "FSD 감독형, 다음 목적지는 한국"이라며 사실상 국내 서비스 출시를 선언했다. 앞서 한국GM도 지난 10월 간담회를 열어, 자사의 '핸즈프리' 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인 '슈퍼크루즈'를 연내 국내에 공식 도입한다고 밝혔다. 

테슬라 오토파일럿

FSD 감독형과 슈퍼크루즈 모두 운전자의 전방 주시를 전제로 하지만, 고속도로 등 특정 조건에서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떼는 것을 허용하는 진일보한 레벨2 자율주행 기술이다.

이들 미국 기업이 국내 업체보다 한발 앞서 첨단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한미 FTA가 있다. 한미 FTA 협약에는 미국 안전기준(FMVSS)을 충족한 미국산 자동차에 대해 연간 5만대까지 국내 안전기준(KMVSS) 인증을 면제해주는 조항이 포함돼있다. 테슬라와 GM은 바로 이 틈새를 활용했다. 미국 공장에서 생산한 FSD 및 슈퍼크루즈 탑재 차량을 국내로 들여오면서, 까다로운 인증 절차를 사실상 건너뛰게 된 것이다.

이는 자국 규제를 모두 준수해야 하는 현대차·기아에게는 명백한 '역차별'로 작용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비슷한 수준의 '고속도로 부분 자율주행(HDP)' 기술을 개발 완료하고도 상용화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아이오닉 5 로보택시 

당초 제네시스 G90과 기아 EV9 등 플래그십 모델에 HDP를 탑재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관련 규제 및 인증 문턱을 넘지 못하며 출시 계획을 보류하거나 사실상 철회했다. 국내 기업은 규제에 묶여 기술을 뽐내지도 못하는 사이, 외국 기업은 FTA를 통해 그 규제를 우회하며 시장에 진입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GM은 과거 슈퍼크루즈 도입의 발목을 잡았던 지도 데이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별도의 노력을 기울였다.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GMTCK)는 100억원 이상을 투입해 국내 고속도로와 주요 간선도로 2만3000km 구간의 고정밀 지도(HD맵)를 자체 구축했다. 인증 문제는 FTA로 피했지만, 기술 구현의 핵심인 데이터 인프라는 직접 투자로 해결하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한 셈이다.

업계는 당장 이들 기술이 국내 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테슬라 FSD 감독형은 미국에서 생산되는 하드웨어 4.0(HW4) 탑재 차량(모델S·모델X 등)에 한정될 가능성이 높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IQ 스포츠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IQ 스포츠

한국수입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테슬라 국내 판매량 4만7962대 중 99.7%는 중국산 모델Y와 모델3여서 실제 적용 대상은 극소수다. GM 슈퍼크루즈 역시 연내 출시될 고가의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IQ'를 시작으로 순차 적용될 예정이라 대중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장기적인 시장 주도권 상실에 대한 우려는 크다.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가 보여준 '초기 선점 효과'가 자율주행 시장에서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KADIF)에 따르면 한국의 자율주행 기술 수준은 미국 대비 89.2%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업체들이 FTA를 발판으로 국내 도로 데이터를 먼저 축적하며 기술을 고도화할 경우, 기술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산 차량의 인증 면제라는 FTA 틈새가 역설적으로 국내 기업의 기술 상용화를 가로막는 규제 장벽을 서둘러 개선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피코리아 김기홍 기자 gpkorea@gpkorea.com, 사진=테슬라, 현대차, G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