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션, 한국인을 대신 해 애국가를 울려다오”

“션, 한국인을 대신 해 애국가를 울려다오”

  • 기자명 지피코리아
  • 입력 2008.05.01 07:15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홍식의 포뮬러BMW퍼식픽 일지] “한국모터스포츠에 보탬 되고 싶어”

아시아에서 F1 드라이버를 꿈꾸는 이들의 첫 격전장, 포뮬러 BMW 퍼시픽이 말레이시아 F1 서포트 레이스로 3월 21~23일 개최되었다. 이 경기에서 이레인의 류이치 나라(19, 일본)와 션 맥다나(18, 미국)는 빠른 스피드로 인상적인 레이스를 펼쳤다. 그러나 여러 변수로 인해 한 번의 포디엄에 만족하며 첫 이벤트를 마쳤다.

연습 세션에서 션과 류이치는 3위 로스 제이미슨(18, 아일랜드)과 0.5초 이상 차이를 벌리며 1, 2위에 올랐다. 겨울 동안 열심히 준비한 결과였다. 토요일 아침, 약간 젖은 노면에서 시작된 예선 성적도 좋았다. 다만 마지막 플라잉랩을 진행 중이던 션이 백스트레이트 마지막 코너에서 스핀한 드라이버에 막혀 0.2초를 손해 보며 류이치에게 0.025초 차이로 폴포지션을 내주었다.

류이치는 일본 카트계에서는 잘 알려진 선수로, 2007년 이레인에서 포뮬러 BMW 아시아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그 이후 이번이 두 번째 포뮬러 BMW 참가였다. 하지만 꾸준히 연습한 결과가 좋아 올 시즌 챔피언 자리를 놓고 션과 팀 내 경쟁이 예상된다.

미국 소년 션 맥다나(사실 그의 눈은 갈색이다. 흔히 서양인을 ‘벽안’이라 부르는 데서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 나중에 션을 보고 눈이 갈색이라며 필자를 탓하지는 마시라)는 제일기획에서 근무하는 아버지, 조 맥다나를 따라 2006년에 우리나라를 찾았다. 미국에서 5년간 카트 레이스에 참가했던 션은 2006년 후반, 우리나라에서 F1800에 참가했고 데뷔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F1 드라이버가 꿈인 션은 아버지와 자신의 진로를 상의한 끝에 2007년부터 포뮬러 BMW 아시아에 출전하게 되었다. 이레인에서 루키 3위에 오른 션은 올해 챔피언을 목표로 포뮬러 BMW 퍼시픽에 출사표를 던졌다. 

참고로 션은 한국에 거주하고 있고, 한국 팀 드라이버로 참가하고 있어

 라이선스 역시 대한민국의 ASN을 갖고 있는 한국자동차경주협회(KARA)에서 받았다. 레이싱 드라이버의 국적은 FIA 규정에 의거, F1 드라이버를 제외하면 자신의 라이선스 국적에 의해 결정된다. F1 드라이버는 본인의 여권 국적을 따른다. 다시 말하면 션이 어떤 경기에 참가하더라도 레이싱 드라이버로서의 공식적인 국적은 대한민국이 된다. 이에 따라 션이 시상대에 오르면 태극기가 올라가고, 우승하면 애국가가 연주된다.

예선 1, 2위를 차지하고 오후에 열릴 1전을 준비하는 드라이버와 팀 멤버들의 우려는 단 하나였다. 바로 매일 오후 4~7시 사이 쏟아지는 열대성 폭우. 5시 45분으로 예정된 결승 스케줄은 F1 서포트 레이스여서 바뀔 수 없다.

30분전부터 팀의 드라이빙 인스트럭터인 앤디 파도우가 레드불 F1 팀에서 날씨 정보를 받고 있었다. 잔뜩 흐린 날씨여서 모두 웨트 타이어를 장착하고 있었으나 피트 게이트 오픈 10분전에는 더 이상 비가 오지 않을 것처럼 보여 대부분 슬릭 타이어로 바꿔 신었다.

레이스 컨트롤에서는 ‘웨트 레이스’를 선포한 상태.  당시 우리 팀 드라이버들만이 웨트 타이어를 신고 있었다. 이유는 레드 불 F1 팀에서 5시 27분부터 폭우가 쏟아질 것이라는 정보를 주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F1 팀의 날씨 정보라지만 하늘은 흐리기만 할 뿐 비가 올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다른 팀들은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현대과학의 최첨단인 F1의 예보는 정확했다. 5시 27분,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고 순식간에 피트 게이트 앞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른 팀들은 뒤늦게 타이어를 교환하느라 바빴다. 그러는 동안 우리 드라이버들은 여유 있게 코스인했다.

이때까지 모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포매이션랩과 스타트 때의 상황은 일반적인 레이스였다면 ‘경기 지연’이 선포될 정도였다. 하지만 F1 GP 서포트 레이스여서 그럴 수는 없었다.

포매이션랩이 끝나고 스타트 순간을 기다렸다. 빨간 불이 하나둘씩 켜지고 모든 불이 꺼지는 순간, 제일 앞의 차 두 대, 류이치와 션은 움직이지 않았다. 1번 코너 진입 때는 벌써 4, 5위로 밀렸다. 개막전이면서 F1 GP 서포트에서 가장 앞줄에 선 것이 부담이 되었는데, 비까지 쏟아져 두 드라이버 모두 마른 노면에서와 같은 엔진 회전수로 출발을 시도한 탓이다.  

자신들이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시도가 역효과로 나타나 스핀을 거듭한 끝에 션과 류이치는 5, 6위로 경기를 마쳤다. 개막전 우승을 바라던 팀원 모두에게는 아쉬운 일전이었다.

일요일 아침 열린 2전에 임하는 드라이버들의 자세는 토요일과 사뭇 달랐다. 포매이션을 끝낸 뒤 류이치의 스타트는 정말 빨랐다. 반면 션은 스타트 직후 1번 코너에서 다른 경주차와의 충돌로 프론트 윙이 파손되었다. 순위는 류이치가 1위, 사이먼 모스(16, 남아프리카공화국)가 2위. 그 뒤를 이어 션이 3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3랩 째, 류이치에게 점프 스타트에 대한 페널티로 드라이브 스루가 주어졌고 이로 인해 11위로 경기를 마쳤다. 두 경기 모두 스타트가 결과를 결정지은 것이다. 그러나 류이치의 스타트는 ‘완벽한 스타트’와 0.1초 차이도 나지 않을 정도여서 아쉬움이 더 컸다.

프론트 윙에 손상을 입은 션은 선전을 펼쳐 3위로 피니시라인을 갈랐다. 션이 시상대에 오르자 앞에서 언급한 상황이 벌어졌다. 국기게양대에 태극기가 올라갔다. 포뮬러 BMW 시상대에 태극기가 올라간 것은 2005년 안석원이 강원도 태백에서 3위를 차지했을 때 이후 처음이다. 이런 태극기를 한국 국적 선수가 없는 가운데 파란 눈의 소년이 자랑스러워하며 올리는 모습을 보는 필자의 가슴 속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션의 경주차에는 성조기와 태극기가 함께 그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KARA 라이선스로 나가기를 고집한다. 태극기와 애국가가 한국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션이 KARA 라이선스를 고집하는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개인적으로 1년에 한두 번 들르는 미국보다 현재 머물고 있는 한국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는 것이 편해서이다. 두 번째 이유는 자동차경주를 시작한 한국의 모터스포츠 현실에 보탬이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 때문이다. 자신이 태극기와 애국가를 업고 간다면 2010년 F1 GP 개최를 앞두고 있는 이 나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2003년부터 포뮬러 BMW 아시아 혹은 퍼시픽에 참가하며 유경욱과 안석원 등이 태극기를 올린 경우는 많았어도 아직 애국가가 연주된 적은 없다.

2008년에 션 맥다나가 국제 경기에서 처음으로 태극기를 시상대 가운데에 올리고 애국가를 울려 퍼지게 할 첫 ‘한국 선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승한 선수의 국가는 F1 서포트 경기에서만 연주된다. 앞으로 싱가포르와 일본 GP에서 서포트 경기를 갖는 션이 꼭 애국가를 울려주기를 바란다.

/전홍식(이레인팀) bigfoot69@hanmail.net,
이 글은 월간 5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저작권자 © 지피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