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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항전 A1 GP 인간미 넘쳐 매력적”

“국가대항전 A1 GP 인간미 넘쳐 매력적”

  • 기자명 지피코리아
  • 입력 2005.12.17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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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식의 A1 말레이시아 그랑프리 제5전 관전기

11월 20일 세팡 F1 경기장에서 열린 A1 GP 제5전을 관전했다.

A1 GP의 탄생부터 쭉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필자에게 평소 익숙한 말레이시아의 세팡 써키트에서 열린 이 경기는 A1을 직접 관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A1 자체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특히 포뮬러 BMW 아시아에서 이레인 팀으로 참가하며 최연소 우승의 기록을 세운 아만 이브라힘(16 인도)이 A1 GP 인도 팀의 드라이버기에 꼭 한번 보고 싶었다.

영국 브랜즈 해치, 독일 유로스피드웨이, 포르투갈 에스토릴, 호주 이스턴 크릭에 이어 5번 째로 열린 이 경기는 A1 GP에게도 나름대로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처음으로 F-1 GP가 열리는 경기장에서 맞는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A1 GP의 공식 스케쥴은 레이스 위크의 목요일 오후 2시부터 검차와 드라이버들의 참가확인으로 시작된다. 대부분의 팀들은 화요일에 경기장에 도착해 피트와 경주차의 셋업과 금요일 오후에 있는 공식 테스트 등을 준비한다.

목요일에 경기장에 도착해 피트와 경기장 곳곳을 둘러본 나는 의외로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조직위원회 내부에도 그랬고 팀 관계자들도 그랬다.

금요일 1시부터 시작된 첫 번째 공식연습에서는 전 F-1 드라이버 출신인 네덜란드의 Jos Verstappen이 1'56"342의 기록으로 가장 빨랐다. 반면 16세의 아만은 Jos보다 3.449초가 뒤진 1'59"791을 기록하며 22위에 올랐다. 상황은 4시부터 계속된 두 번째 공식연습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역시 전 F-1 드라이버 출신인 아일랜드의 Ralph Firman이 1'56"663을 기록하며 기록지 맨 위에 이름을 올렸고 아만은 2.380초 늦은 1'59"043으로 21위에 머물렀다. 팀은 연습이 끝난 후 데이터분석에 들어갔다. 문제는 섹터 2에 있었다. 섹터 1과 섹터 3에서는 1위와 0.5초 이내의 갭을 보이는 아만이 섹터 2에서는 1.5초가량 뒤지는 것이었다. 좀 더 구체적인 분석을 한 팀은 아만의 브레이킹과 트로틀링에서의 문제를 발견하고 아만에게 수정할 것을 주문했다.

토요일 아침 11시에 시작된 세 번째 공식연습에서 아만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1위 Jos의 1'55"193의 기록에 불과 0.612초 떨어지는 1'55"805로 6위에 오른 것이다. 어제 발견한 문제점을 모두 수정한 결과였다. 인도팀은 아만의 이런 발전에 고무되어 분위기 자체가 바뀌었다. A1 GP 내에서도 최연소 드라이버이고 가장 경험이 없는 드라이버인 아만의 이러한 선전은 A1 관계자 모두를 놀라게 하기엔 충분한 것이었다.

A1 GP의 예선방식은 약간 특이하다. 15분간의 예선을 4번 갖는데 각 예선 시 단 1랩만 주행할 수 있다. 이 네 번의 예선 중 빠른 두 세션의 기록을 합산해 스프린트 레이스의 그리드를 정한다.

오후 2시 15분에 시작한 1차 예선에서 1'54"441을 기록한 F-1 드라이버 출신 스위스 드라이버 Neel Jani가 폴포지션을 차지했다. 반면 아만은 1'55"620으로 15위에 올랐다. 인도팀 예선 최고의 성적이었다.

2시 40분에 시작하는 2차 예선 직전에 하늘은 잔뜩 찌푸렸고 곧 비가 쏟아질 기세였다. 모든 팀들은 비가 쏟아지기 전에 1랩을 빨리 끊기 위해 피트레인에 정렬했다. 아만은 일본의 Hayanari Shimoda에 이어 5번째로 코스인했다. 하지만 세팡 경기장의 7번 코너 부근에서는 이미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마음이 급해진 아만은 일본 선수가 자신보다 훨씬 느리다는 것을 잊은 채 많은 거리를 두지 않고 스타트 라인을 통과했다.

결국 예선 랩의 중반부터 아만은 Hayanari를 다시 만났고 이에 막혀 약 1.3초를 손해 보며 1'57"209의 기록으로 폴포지션인 Neel(1'54"521)에 2.688초를 뒤지며 다시 15위에 올랐다. 지난 이야기지만 이 1.3초를 손해 보지 않았다면 아만은 2차 예선에서 8위에 오를 수 있었고 스프린트 레이스에서 브라질의 Nelson Piquet Jr.에 이어 9그리드에서 출발할 수도 있었다.

2차 예선 중반부터 트랙 전역에 쏟아지기 시작한 빗방울은 시간이 흐를수록 굵어져 3,4차 예선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3차 예선에서는 단 3명의 드라이버만이 참가했고 4차 예선에는 그리드 포지션과는 상관없이 레인 셋업을 위해 테스트 주행을 하는 18개 팀이 참가했다.

사실 A1 GP 차량은 필자가 예상한 것만큼 빠르지는 않았다. 세팡 경기장에서 2005년 F-1 GP 폴포지션을 차지한 Renault의 Fernando Alonso의 랩타임이 1'32"582였던 것을 고려해 A1 GP는 1분 40초대일 것으로 기대했었다. 하지만 위에서 본 것처럼 예선 폴포지션의 기록은 F-1에 22초 이상 뒤지는 1'54"441에 그친 것이다. 다시한번 F-1의 기술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일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호텔의 커튼을 걷어 날씨를 확인했다. 어제 비가 올 때 테스트하지 못한 아만이 비가 오면 어쩌나하며 고민했기 때문이다. 언제 비가 올지 모르는 말레이시아에서 1시 30분에 시작될 레이스의 날씨를 걱정하며 아침 7시에 하늘을 보고 있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아마 그 하늘을 바라보며 꼭 날씨가 맑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1시에 피트게이트가 오픈되었고 스타팅 그리드에는 팀 스탭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다. 1시 30분에 포메이션랩이 시작되었고 마지막 코너에서 페이스카가 빠져나가자 모두들 숨죽이며 롤링 스타트를 지켜보았다. 폴포지션인 Neel은 선두를 지키며 1번 코너에 들어갔고 4위로 출발한 영국의 Robbie Kerr가 2대를 추월하며 2위로 올라섰다.

지난 독일경기부터 6번 연속(스프린트, 피쳐 레이스) 우승을 거머쥔 프랑스가 3위로 쳐지며 우승 행진이 멈춰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4랩 째에 프랑스의 Alexandre Premat은 영국을 헤어핀에서 추월하며 1위로 달리던 스위스를 향해 돌진했다. 5랩에 1.7초가 차이 나던 스위스와 프랑스의 갭은 점점 줄어들어 어느새 거의 같이 달리고 있었다. 마지막 랩인 15랩의 스타트 지점에서 불과 0.170초의 근소한 차이로 앞서던 스위스는 결국 4번 코너에서 프랑스에게 선두를 내주고야 말았다.

시상대에는 1위 프랑스, 2위 스위스, 3위 영국이 올랐고 15 그리드에서 출발한 아만은 4계단 뛰어오르며 11위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아만과 10위를 차지한 미국의 Bryan Herta는 9위의 포르투갈에 막혀 경기 내내 고전했으나 결국 간발의 차이로 뒤지며 경기를 마쳤다.


10위에게까지 점수가 주어지는 A1 GP에서 11위로 끝난 아만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 역시 인도팀이 기록한 가장 좋은 성적이라는데 위안을 삼았다.

스프린트 레이스가 끝나고 바로 3시부터 피쳐 레이스가 시작했다. 스프린트 레이스를 11위로 끝낸 아만은 피쳐 레이스에서 최초의 포인트 획득에 도전했다. 롤링 스타트를 하는 스프린트 레이스와는 달리 피쳐 레이스에서는 스탠딩 스타트를 한다.

스타트 아치의 빨간 불이 모두 꺼지자 아만은 전광석화 같은 스타트를 보이며 7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1번 코너에서 이태리에 인코너를 허용하며 자리를 내주었고 주춤하는 사이 파키스탄에도 양보해야했다. 연속되는 2번 코너에서 이를 회복하려던 아만은 결국 잔디밭으로 밀리며 13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아만은 12위로 떨어진 파키스탄에 막혀 추월의 기회를 노리던 중 4랩 째 4번 코너에서 일찍 브레이킹하던 파키스탄과 접촉했다. 이 사고로 파키스탄은 리타이어하고 아만은 프론트 노우즈를 잃었다. 곧 바로 피트로 들어와 타이어와 노우즈를 바꾸고 나갔으나 마음이 앞선 아만은 7랩 째에 스핀해서 마샬의 도움을 받아 나왔으나 이로 인해 실격당하며 아쉽게 경기를 끝냈다.

한편 스프린트 레이스의 우승으로 폴포지션에서 출발한 프랑스는 16랩에 타이어 교환을 위해 피트인한 것을 제외하고 한번도 선두의 자리를 놓지 않으며 팀의 8번 연속 우승행진을 이어갔다. 미캐닉들도 40.3초(피트인부터 아웃까지의 총 시간)라는 빠른 피트인 시간을 기록해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2위는 다시 스위스에게 돌아갔다.

스위스의 Neel은 스타트에서 영국에 추월당해 경기 초반 고전하다가 12랩에 추월하고 프랑스를 향해 달려갔으나 18랩에 실시한 타이어 교환 피트인에서 53.11초가 걸려 우승에 대한 욕심을 접어야 했다. 피쳐 레이스에서 가장 눈에 띤 것은 16그리드에서 출발해 3위로 시상대에 오른 체코의 Tomas Enge였다.

처음 본 A1 GP였는데 F-1과는 분명 다른 재미가 있다. 가장 큰 다른 점 몇 가지를 꼽으라면 역시 국가 대항전이라는 점과 기계적인 F-1과는 달리 훨씬 인간적이라는 점이다.

A1 GP의 시상대에는 모든 드라이버들이 자국기를 몸에 두르고 오른다. 레이싱 드라이버로서, 그 나라의 한 국민으로서 그보다 더 자랑스러운 일이 어디 있을까?

이번 경기에서 A1 GP 팀 말레이시아는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고 스프린트 레이스에서는 8위를, 피쳐 레이스에서는 지금까지 최고 성적인 5위를 기록했다. 그랜드스탠드의 관중들은 말레이시아의 Fairuz Fauzy와 전 F-1 드라이버 Alex Yoong이 메인스트레이트를 지나갈 때마다(스프린트 레이스는 Fairuz Fauzy가, 피쳐 레이스는 Alex Yoong이 각각 참가했다.) 그들의 국기가 가슴에 박힌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말레이시아 국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경기가 끝나자 그들은 ‘Malaysia Boleh’ - ‘말레이시아는 할 수 있다.’ - 를 외치며 자축했다. 마치 2002년의 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A1 GP 팀 코리아가 없는 상황에서 A1 경기를 바라본 필자는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카메라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생각했다. 언젠가는 꼭 팀 코리아로 참가해 빨간색 물결을 이루는 가운데에서 박수소리를 듣고 싶다고...,

/전홍식 감독(BMW코리아-이레인) bigfoot69@hanmail.net, 사진출처:a1g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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