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럭셔리 브랜드를 제외하고 국내 준대형 세단의 대표적 자동차로는 현대자동차 '그랜저'를 꼽을 수 있다. 지난 1986년 1세대부터 2022년 7세대 모델(GN7)까지 많은 진화를 거듭하면서 꾸준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이르면 올 연말이나 내년 상반기 중 페이스리프트 모델 출시도 예정돼 있다.
최근 시승한 차량은 2026년형 하이브리드 1.6T 2WD였다. 기본 프리미엄 트림 가격은 4423만원부터 시작한다. 시승차는 상위 캘리그래피 트림으로 2열 전동식 도어 커튼, 파노라마 선루프,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2 등 옵션이 추가돼 5746만원이었다.

첫인상은 준대형의 큰 덩치와는 결이 다른 부드러움이었다. 실내는 럭셔리는 아니지만 깔끔하고 잔잔한 고급스러움이 느껴졌다. 요란함보다는 편안함을 강조한 방향성이 뚜렷하다. 이는 이 차의 성향과 일치한다. '세게 달리기'보다는 '느긋하게 운전하기'.
그랜저 하이브리드의 시스템 최고출력은 230마력이다. 엔진 출력 180마력, 모터 출력 44.2kW이며 엔진 최대토크 27.0kgf.m/1500rpm, 모터 최대토크 264Nm다.



그랜저는 재빠른 차는 아니지만 느리지도 않다. 이전 세대보다 다운사이징된 1.6L 터보 하이브리드는 스펙만 보면 힘이 부족할까 걱정하기 쉽지만 실제 출발해보면 생각보다 가속페달에 대한 초기 반응이 좋다. 저속 구간에서 전기모터가 먼저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이후 어느 정도 속도가 붙으면 고급차 특유의 매끄러우면서 무게감 있게 가속이 된다.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며 빠르게 치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주행 성능은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다. 다만 시내 주행 때는 흠잡을 데 없지만 고속 주행 시 뻗어 나가는 맛이 부족해 운전자에 따라 약간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드라이브 모드를 에코에서 스포츠로 변경하면 조금 나아지지만 큰 폭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이 경우 운전대 패들시프트로 기어 단수를 이용하면 가속감을 좀더 높일 수 있다.
하이브리드 차량이지만 회생제동을 운전자가 별도로 조절할 수 없는 점은 아쉽다. 시승 당시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도 제동력(엔진 브레이크)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회생제동은 브레이크를 밟아야 작동됐다. 이로 인해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도심과 내리막길에서 불필요하게 브레이크를 자주 밟아야 했다.

그랜저의 진짜 무기는 승차감과 정숙성이었다. 프리뷰 전자제어 시스템을 탑재해 카메라가 전방의 노면 정보를 미리 파악해 서스펜션 감쇠력을 제어한다. 하체도 부드러움과 단단함이 균형을 잡았고 잔진동 흡수력이 좋아 노면이 거칠어도 잘 걸러져 들어온다.
또 액티브 로드 노이즈 컨트롤 기능도 있어 노면 소음과 반대되는 제어음을 내보내 실내 정숙성을 높여준다. 하이브리드 시스템 특유의 EV 모드 주행으로 엔진음이 적고 고속에서 풍절음 억제력도 좋은 편이다.
그랜저 차체 크기는 길이 5035mm/너비 1880mm/높이 1460mm다. 휠베이스 2895mm다.

준대형답게 내부 공간이 넉넉해 가족이나 동승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차량이다. 특히 2열은 레그룸과 헤드룸 모두 꽤 여유가 있어 패밀리 세단은 물론 여전히 쇼퍼드리븐차로서의 매력이 남아 있다.
또다른 장점으로는 뛰어난 연비를 꼽을 수 있다. 공인연비는 19인치 기준 복합 16.7km/L(도심 16.6km/L, 고속도로 16.8km/L)다. 수시로 EV 모드가 개입해 도심 주행에서도 뛰어난 경제성을 자랑하고 고속도로에서 일정 속도로 순항하면 엔진 회전수가 '0'이 되면서 연비가 개선된다.

사실 연비는 운전 습관에 따라 차이가 크다. 시승차가 20인치 타이어를 장착했고 주행 중 스포츠 모드를 많이 사용했기에 최종적으로는 16.2km/L가 나왔다.
그랜저 1.6 터보 하이브리드는 화려하게 달리는 차가 아니다. 일반적인 운전 재미라는 측면에서도 평범하다. 하지만 편안함·정숙성·공간 활용성 위주의 패밀리 세단이나 비즈니스 세단을 찾는 사람이라면 그랜저는 현재 국산차 중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라고 할 수 있다.
/지피코리아 경창환 기자 kikizenith@gpkorea.com, 사진=지피코리아·현대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