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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기] 53세 카트레이서, 믿지 못할 '생애 첫 우승기'

[체험기] 53세 카트레이서, 믿지 못할 '생애 첫 우승기'

  • 기자명 지피코리아
  • 입력 2018.05.26 07:30
  • 수정 2018.05.2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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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었던 지난 22일(화) 오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인근 탄천 옆 시민공원에 있는 잠실카트장. 코리아카트(대표 임재흥)와 지피코리아(대표 김기홍)가 주최하는 2018 카트 짐카나대회에 출전 신청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어, 이게 누구셔? 아반떼컵 챔피언이 출전하는 건 반칙 아닌가?” 일찌감치 경기장을 찾아 코스를 살피던 참가자들이 가족과 함께 나타난 박동섭 선수를 보고 웅성거렸다. 박동섭 선수는 2017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8라운드 아반테컵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며 시리즈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했던 주인공이다. 그 뿐이 아니었다. 카트 선수, 레이싱대회에 직접 출전하는 자동차 전문기자들까지 쟁쟁한 참가자들이 여럿이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우승 좀 해보려고 했는데. 다 틀렸네.” “그래도 카트는 자동차와는 다르지. 해봐야 해.” 입상을 일찌감치 포기하는 사람, 오히려 전의를 불태우는 사람 등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카트’에 관해 말하자면 나도 아주 쌩초보는 아니다. 스포츠카트 경기에서 몇 차례 입상했다. 2015년 인제군수배 내구레이스 3인조전에서 우승도 했다. 포뮬러머신으로 진행하는 코리아포뮬러스쿨 과정도 수료했다. 진짜 취미는 엔듀로 바이크다. 국내 대회에 여러 차례 출전했고, 2015년 8월 태국에서 일주일 동안 열린 아시아크로스컨트리랠리에 한국대표로 출전해 모토(바이크)부문 23위를 기록했다. 작년 8월에는 인천 BMW 드라이빙센터에서 열린 ‘아시아 오토 짐카나 컴피티션(Asia Auto Gymkhana Competition)’에도 출전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개인적으로 출전 신청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 “기존 방식과는 다른 카트 경기가 열린다”는 얘기를 듣고 덜컥 출전신청서를 내고 출전비를 송금했지만, “쓸 데 없이 무모했다”는 자괴감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한눈에 내가 최고령(53) 출전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주최측이 경기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타임 타겟 트라이얼’은 600m 코스 3바퀴 주행의 예상기록을 적어내고 거기에 가장 근접한 기록을내는 사람이 우승하는 방식이었다. 이 종목은 160cc 9마력짜리 레저카트로 진행됐다. 연습주행을 통해 자신의 기록을 측정해 본 뒤 예상기록을 적어내라고 했다. 레이싱 도중 돌발 변수가 많기 때문에 고른 기량을 발휘하고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

또다른 종목은 ‘짐카나’ 방식이다. 짐카나는 원래 러버콘(고무로 만든 고깔 모양의 교통안전 유도장비) 등 인공 장애물로 다양한 주행 코스를 만든 뒤 누가 빨리 도느냐로 순위를 가리는 방식이다. 카트 경기장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서는 평소에 쓰지 않는 코스까지 활용한다고 했다. 한번 주행한 곳을 다시 돌아나가야 하는 곳도 있어, 헷갈리기 십상이었다. 전체 코스 3바퀴를 돌아 그 중 베스트 랩(best lap) 기록으로 순위를 가린다고 했다. 중간 중간에 놓인 러버콘을 건드리거나 코스를 벗어나면 페널티 타임을 부과한다는 설명이다.

출전선수는 모두 23명. 대부분이 두 종목 다 출전했다. ‘MOTUL’이라고 적힌 빨간색 대형 에어아치(AIR ARCH)가 세워진 코스에서 출전자들이 연습 주행을 시작했다. 나는 코스 주행 도면을 핸드폰에 다운받아 급하게 코스 진행 순서를 외웠다. 앞서 주행을 시작한 선수들 중 몇몇이 코스를 이탈하거나, 빼먹고 주행했다. 작년에 아시아짐카나페스티벌에 출전했던 경험이 있는 나는 “뭐, 이 정도야 껌이지”라는 오만한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 내 차례가 됐다. 카트도 여러 번 타본 경험이 있었기에 자신 있게 출발했다. 그런데, 출발한 직후 세 번의 우회전을 했을 무렵 코스를 이탈하고 말았다. 안전 펜스로 둘러싸인 경기장에서 코스 구분을 위한 지형지물을 찾지 못하고 시선을 빼앗긴 것이다. 패닉 상태에서 정신없이 ‘뺑뺑이’를 돌고 나니 속이 메슥거렸다. 나보다 먼저 코스 이탈을 하며 영혼이 털렸던 출전자들이 “막상 코스에 들어가니 헷갈리지요?”라며 묘한 미소를 날렸다. 

짐카나 방식 경기에는 270cc급 스포츠카트가 사용됐다. 시속 70km가 넘게 나오는 이 녀석은 레이싱카트 못지 않게 빨랐다. 카트 중량이 60Kg 정도다. 실제 체감은 승용차 창문을 다 열고 시속 150km쯤으로 달리는 것과 비슷했다. 연습이 시작되자 출전자 여러 명이 스핀했다. 빠른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원심력 때문에 코스를 벗어나거나 갑작스런 브레이킹으로 인해 팽이처럼 빙빙 도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짐카나 연습에서는 별다른 실수 없이 완주했다. 주행 후 기록을 확인하러 계측요원을 찾아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공식기록을 측정하는 장비인 ‘트랜스폰더(차량이나 카트에 장착해서 결승점을 지나가면 자동으로 기록이 측정되도록하는 장치)’의 오류로 인해 내 기록이 측정되질 않았다. 낭패였다. 할 수 없이 다른 선수들의 주행을 유심히 지켜봤다. 나와 비슷한 실력인 것 같은 선수, 과격한 드라이빙을 하지 않는 선수를 골라 그의 기록을 확인했다.

주최측은 “3바퀴 합산 예상기록을 적어내라”고 했다. 나는 1바퀴 기록을 어림 짐작한 뒤 거기에 3을 곱했다. 또 실제 결승에서는 스탠딩 방식으로 출발하기 때문에 초반 가속이 안 되는 걸 감안해서 몇 초를 더한 뒤 기록을 제출했다. ‘2분55초800’. 엄청나게 수학적이고 논리적으로 계산한 것 같지만 그냥 말 그대로 ‘찍은 것’이었다. 어차피 처음 출전할 때 내 목표는 짐카나였기 때문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짐카나 경기가 먼저 시작됐다. 역시 박동섭 선수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48초60. 다들 50초대 기록을 내고 있는데 깜짝 기록을 낸 것이다. 다른 선수들은 러버콘을 들이받기도 하고, 코스를 이탈하기도 했다. 그 중엔 테크닉은 뛰어났지만 3바퀴 모두 코스를 이탈하는 바람에 기록지에 ‘無’라고 적힌 선수도 있었다. 

내 순서가 됐다. “실수만 하지 말자”고 되뇌었다. 첫번째 바퀴를 돌고 본부석쪽을 지날 때 “오호!”하는 탄성이 들렸다. “‘늙다리 아저씨’가 제법 카트를 탈 줄 안다”는 반응으로 느껴졌다.(뭐, 순전히 내 생각이다 ㅎㅎ) 무사히 골인. ‘베스트 랩 타임’은 50초79로 기록됐다. 콘을 건드리는 바람에 페널티 타임을 부과받은 게 아쉬웠다. 3위 이내 입상의 꿈은 무산됐다. 결국 김민규가 1위(47초29), 이재범이 2위(47초82), 박동섭이 3위(48초60)를 차지했다. “잠실카트장은 눈 감고도 돌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 ‘영 플레이어’들이 박동섭을 제치고 1,2위로 올라선 것이다.

점심시간도 없이 곧바로 ‘타임 타겟 트라이얼’ 경기가 이어졌다. 출력이 좋은 카트로 짐카나 경기를 한 뒤라서 160cc 카트에 올라타니 드라이빙이 훨씬 편했다. 나는 한 번의 실수도 없어 세바퀴를 완주했다. 마지막 바퀴에서는 “이거 너무 잘 탄 거 아닌가” 싶어서 일부러 풀 악셀을 하지 않고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였다. 아, 그게 ‘신의 한수’였다. 기록은 2분55초82. 내가 적어낸 예상기록 ‘2분55초800’과는 ‘0.02초’차이였다. 남은 선수들의 경기가 다 끝나고, 집계된 기록 옆에 선수들이 적어낸 예상기록이 함께 표시되기 시작했다. 모니터 앞에 바글바글 모인 선수들이 ‘조정훈’ 선수의 예상기록이 표시되고, 그 차이는 0.02초라고 적히자 “우와! 대박!”이라고 소리쳤다.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인생이 그런 거다. 이래도 저래도 마음 먹은 대로 안 되는 법이다. 간절히 원하는 사랑이 속절없이 떠나가고, 때론 기대하지 않은 복이 데굴데굴 굴러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결국 1위 조정훈(0.02초 차이), 2위 제성욱(2.4초 차이), 3위 이학기(3.43초 차이) 등 인생 연륜이 있는 사람들이 ‘타임 타켓 트라이얼’ 부문을 휩쓸었다.

시상식 즈음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대형 천막 아래서 시상식이 열렸다. 나는 멋진 트로피를 받았다. 이번 대회를 위해 특별히 주문 제작된 카트레이서 모양의 트로피였다. ‘생애 첫 개인전 우승 트로피’도 행복했지만, 더욱 기분 좋은 것은 꼭 갖고 싶었던 ‘고프로’ 카메라가 부상이었다는 점이다. 나는 그동안 바이크나 카트, 포뮬러를 탈 때는 중국산 ‘짝퉁’ 고프로를 달고 다니며 화질 구린 영상을 찍어왔다. 이제 바야흐로 새로운 영상의 세계에 입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 대회에는 결혼을 앞둔 연인, 함께 출전한 아버지와 중학생 아들 등 행복한 출전자들이 많았다. 중학생 출전자는 연습주행 때 ‘놀이공원 꼬마자동차’가 무색하게 조심조심 운전을 하더니, 막판에는 과감한 주행으로 부모를 열광시켰다. 카트는 그런 거다. 진입 장벽이 낮다. 그렇다고 만만히 볼 수는 없는 종목이다. 

뒤늦은 점심식사를 마친 뒤 우승트로피와 부상을 앞세우고 의기양양하게 귀가했다. “어때? 우승 트로피 멋지지?” 아내의 싸늘한 대답이 귀에 꽂혔다. “응, 축하는 하는데…. 트로피를 또 어디에 올려놓으려구? 안돼. 회사 사무실에 가져다 놓고 힘들 때마다 쳐다보면서 힘 내셔!”

/조정훈(모터칼럼니스트) tigercho333@hanmail.net, 사진=지피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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