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원대 전기차' 캐스퍼 일렉트릭이 최대 22개월의 출고 적체를 빚는 '나 홀로' 흥행을 기록하며, 연 10만대 선이 무너진 내연기관 경차 시장의 몰락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소비자들이 '작은 차' 자체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가성비 잃은 내연기관 경차'를 외면하는 동안, 정부 보조금으로 무장한 '소형 전기차'가 경차 수요의 빈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1~10월 국내 완성차 5개사의 경차 누적 판매량은 6만4대에 그쳤다. 이는 전년 동기 8만2485대보다 27.3% 급감한 수치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연간 판매량은 7만대 수준에 머물러, 2년 연속 10만대 선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 역대 최소 판매량 기록이 유력하다.
경차 시장의 급격한 위축은 예견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경차 시장의 한 축을 담당했던 쉐보레 스파크가 단종됐고,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경차는 현대차 캐스퍼(내연기관), 기아 레이, 레이EV, 모닝이 전부다. 선택지가 줄어든 상황에서 소비자 선호도 빠르게 변했다. 캠핑, 낚시 등 여가 활동 확산으로 실용성을 겸비한 소형 SUV가 경차 수요를 대거 흡수했다.

한때 경차 시장을 견인했던 캐스퍼(내연기관) 모델의 부진도 뼈아프다. 출시 후 매년 3만대 이상 팔리던 캐스퍼는 올해 1~10월 6725대 판매에 그쳤다. 경차의 최대 무기인 '가성비'마저 애매해졌다.
캐스퍼 가솔린 1.0 터보(17인치 휠) 모델의 복합연비는 12.3km/리터(ℓ) 수준으로, 압도적인 효율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신차 시장과 달리,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 기준 올해 3분기 중고차 실거래 대수에서 모닝(1위), 스파크(2위)가 최상위권을 차지한 현상은 경기 불황 속 소비자들이 신차 대신 저렴한 중고 경차로 눈을 돌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내연기관 경차 시장이 고사 위기에 처한 반면, '캐스퍼'라는 이름을 공유하는 전기차 모델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현대차 캐스퍼 온라인 주문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금 바로 '2026 캐스퍼 일렉트릭'을 계약할 경우 트림에 따라 최소 13개월(크로스)에서 최대 22개월(투톤 루프 및 매트 컬러)을 기다려야 한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국내법상 '경차'가 아닌 '소형차'로 분류돼 경차 세제 혜택은 없지만, 대신 전기차 보조금 대상이다. 흥행의 핵심은 보조금을 등에 업은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이다. 캐스퍼 일렉트릭 프리미엄 트림(42kWh)의 기본 가격은 2740만원이지만, 2025년 기준 국고 보조금 500만원에 지자체 보조금이 더해진다.
서울시에서는 약 2184만원(총 보조금 556만원), 보조금이 가장 많은 경북 울릉군에서는 1202만원(총 보조금 1537만원)에도 구매가 가능하다. '1000만원대 전기차'라는 가격표는 '일상용 세컨드카' 수요를 완벽하게 충족시켰다.

실제 캐스퍼 일렉트릭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속에서도 올해 1분기 2724대가 팔려 국내 전기차 판매량 2위를 기록했다. 신차를 기다리지 못한 소비자들이 중고차 시장으로 몰리면서, 보조금을 받고 구매한 차량이 신차 가격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프리미엄'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극심한 출고 적체는 높은 인기 외에 구조적인 '공급 부족' 문제도 자리하고 있다. 캐스퍼를 전량 위탁 생산하는 광주글로벌모터스(GGM)의 올해 생산 목표 4만3700여대 중 80%에 육박하는 3만4000대가 수출 물량(일본명 '인스터' 등)이다. 내수 물량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GGM 노조의 잇단 파업 등 생산 차질 문제도 공급 부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지피코리아 김기홍 기자 gpkorea@gpkorea.com, 사진=현대차, 기아